달리기는 거의 어디에서나 가능합니다.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나 공은 물론, 심판이나 코치 또는 팀이 필요 없는 운동이자 체력 단련 방법입니다. 그저 괜찮은 운동화 한 켤레와 자신의 몸과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달리기의 개념이 이처럼 간단하긴 하나 여성에게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실제로 중장거리 달리기는 여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또한 의사에서 교사, 경주 단체, 심지어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여성 주자의 스포츠 참가를 막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부조리에 맞선 여성들 덕분에 오늘날에는 달리기 대회, 마라톤, 심지어 지구력 경주까지도 인종, 신체 장애,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거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한때 혁명적 변화를 이끌었으며 오늘날 우리의 달리기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가고 있는 놀라운 여성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966년 사상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여성 주자는 단지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가 신청서가 거절된 까닭에 등록된 참가자가 아니었습니다. 참가 신청 후 그녀가 받은 답장에는 “여성은 생리학적으로 마라톤 거리를 달릴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깁은 이미 60킬로미터를 지속적으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주최 측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마라톤 대회 당일 깁은 출발선 근처의 작은 나무들 뒤에 숨어 참가한 주자들의 절반이 지나갈 때를 기다리다 경주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녀가 결승선에 가까워지자 이를 옆쪽 라인에서 지켜보던 여성들이 팔짝팔짝 뛰면서 그녀를 응원하던 모습을 깁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깁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어떤 일이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어떤 일이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보비 깁
비등록 주자로서 보비 깁이 마라톤에 참가한 지 1년 뒤 캐스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는 등록된 참가자로서 사상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 여성 주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녀가 남성일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위처는 자신의 이름을 ‘Kathrine Virginia’ 대신 ‘K.V.’라고 서명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마라톤 당일은 매우 추워 스위처는 회색 트레이닝복과 풀오버를 입었는데, 그 모습은 대회에 참가한 740명의 남성들과 비슷했습니다. 출발점으로부터 약 3마일(약 5km) 되는 지점에 이르자 주최 측 경주 담당 이사 조크 셈플(Jock Semple)은 한 여성이 등록 번호를 착용한 채 경주에 참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셈플은 그녀에게 돌진하여 등쪽의 등록 번호를 찢으려 하며 “우리 대회에서 당장 나오고 그 번호를 내놔!”라고 소리쳤습니다. 다행히 스위처의 곁에 있던 그녀의 남자친구가 셈플을 주행 중인 도로에서 밀어 낼 수 있었습니다. 스위처는 그 일로 다소 정신적 충격을 받긴 했으나 이렇게 말합니다. “그 순간 저는 여성도 마라톤 선수가 될 수 있고 완주할 수 있으며 그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스위처는 자신의 상징인 261번을 달고 뛰었으며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1972년 린 블랙스톤(Lynn Blackstone), 제인 멀크(Jane Muhrke), 리즈 프란체스키니(Liz Franceschini), 캐시 밀러(Cathy Miller), 팻 배럿(Pat Barrett), 니나 쿠스칙(Nina Kuscsik) 등 여섯 명의 여성이 뉴욕 시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이들은 참가가 허가되기는 했으나 남성 참가자들보다 10분 먼저 출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의 마라톤 이사회였던 A. A. U.(아마추어 경기 연맹)가 제정한 규칙이었습니다.
이 차별적 규칙에 대한 항의 행동으로서 여섯 명의 여성은 출발 총소리가 나자마자 바닥에 앉아 “지금은 1972년, A. A. U.는 깨어나라.”라고 쓰인 항의 표지판을 들어 올렸습니다. 10분 후 그들은 일어나 두 번째 출발 총소리가 나자 나머지 남성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뉴욕 시 마라톤 6인과 같은 여성의 항의 덕분에 스포츠의 성 편견은 줄어들었으며 오늘날의 마라톤 등록 번호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포용성이 확대되었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달리기의 정의를 새롭게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투리아 피트(Turia Pitt)도 그 중 한 명입니다. 2011년 9월 피트는 호주의 오지를 통과하는 100 km 울트라 마라톤 경주에 참가하였으며 그곳의 초원에서 들불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피트는 신체의 65퍼센트에 화상을 입었으며 의료진은 이로 인해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피트는 손가락 일곱 개을 잃었고 6개월 이상을 입원해 있었으며 200회 이상의 수술을 견뎌 냈고 2년에 걸쳐 회복했습니다.
피트는 결국 모든 예상을 깨고 자신의 삶을 재건하였습니다. 2016년 5월 피트는 자신의 최초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으며 그로부터 5개월 후에는 하와이에서 열린 Ironman World Championships에 참가하였습니다. 피트는 자신이 지나온 모든 역경에도 자신과 세상을 향해 그토록 고통스럽고 쇠약한 시기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피트는 걷게 되었고 마침내 달릴 수 있었습니다.
여성의 달리기 방식에 혁명을 일으킨 또 다른 여성은 엘리트 마라톤 선수이자 아디다스 홍보대사인 라하프 카티브(Rahaf Khatib)입니다. 그녀는 또한 세계 유명 마라톤을 여섯 차례 완주한 최초의 시리아인이며, 열 한 번의 마라톤, 그리고 두 번의 철인 3종 경기에서 우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카티브가 다른 마라톤 선수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종교로 인해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방해 받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카티브에게 히잡을 쓴 채 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나는 달리며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내가 얼마나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나는 입을 열지 않고도 그저 출발선에 서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카티브는 다른 이슬람교 여성들을 위해, 특히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카티브는 필요한 변화를 이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같은 다른 이들이 나서서 걷고 뛰고 그들 자신의 꿈을 쫓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입을 열지 않고도 그저 출발선에 서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라하프 카티브